서울의 터줏대감은 LG트윈스다. 그 전신은 MBC 청룡
- 트윈스 story
- 2018. 4. 13. 11:00
서울의 터줏대감은 LG트윈스입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LG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이 최초로 서울을 연고로 한 팀이었으니까요. MBC 청룡은 프로야구 탄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팀입니다. MBC는 이미 1981년 6월부터 창사 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MBC가 먼저 팀을 만들면 다른 팀이 뒤따라 창단해서 프로야구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이즈음 정부 차원에서 프로야구 창설이 추진되자 MBC는 자신들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연고지도 최고의 노른자위인 서울을 요구했답니다. 프로야구를 추진한 측에서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는데 그 이유는 “방송이 참여해야 프로야구를 홍보하고 확산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MBC는 팀이름을 청룡으로 했습니다. 신문 인터뷰에서 공모결과 ‘드래곤즈’란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외래어인데다 가까운 일본에도 유사한 팀명이 있어 청룡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MBC 사옥이 자리한 정동이 옛날부터 ‘용마루’로 불렸다는 것도 청룡이 선정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한편 MBC 초대 감독에는 원래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이 유력했지만 그는 해태 감독으로 갔고 김영덕 감독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그도 OB에 영입이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이 거론되다가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활약한 백인천이 초대 감독이 됐습니다.
원년 시즌 전 대다수의 야구 전문가는 MBC가 삼성과 함께 상위권을 다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유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교팀을 보유한 서울 지역을 연고로 둔만큼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실제 MBC는 프로 원년 46승 34패로 전체 3위에 머물렀습니다.
MBC의 창단 첫 해에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막전과 백인천의 4할 타율입니다. MBC청룡은 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개막전을 치렀습니다. 이날 경기는 연장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연장 10회말 터진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이었습니다. 하지만 포수 유승안(현 경찰청 감독)에게 영웅이 될 기회가 먼저 왔었습니다. 유승안은 4-7로 뒤진 7회말 공격에서 동점 3점포를 쏘아 올려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7-7로 맞이한 연장 10회말에는 1사 1, 2루의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삼성에선 그날 내가 잘 맞으니까 걸러서 만루를 채우고 백인천 감독과 상대하려 했다. 그런데 투 볼에서 3구째가 가운데에 약간 높은 코스로 오는데,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방망이를 내밀었다. 결국 빗맞은 투수 앞 땅볼로 1사 만루가 될 상황이 2사 1, 3루가 되어 버렸다.” 그날에 대한 유승안 감독의 회고입니다. “그래놓고 2루에 가서 서있는데 하늘이 노래지더라. ‘감독님한테 죽었다’ 싶기고 하고. 지금 생각하면 치면 안 되는 공인데, 그날의 히어로가 되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방망이가 나와 버렸다. 그래도 2아웃 만루에서 이종도 선수가 만루홈런을 치는 바람에 프로야구 첫 경기가 그렇게 극적인 승부가 되지 않았나. 농반진반이지만, 내가 거기에 큰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유감독은 얘기했습다. 유 감독의 말처럼 프로야구는 첫 경기부터 멋진 명승부를 펼치면서 사람들에 ‘프로야구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주었고, 백인천 감독은 지금도 개막 경기가 한국 프로야구를 살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이 감독 겸 선수로 기록한 4할의 타율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으로 보입니다. 이종범 선수가 현역시절 가장 근접한 기록까지 가며 4할 타율의 기대감을 높인 적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의 백인천 감독이 구사한 타격 기술은 당시 국내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히 상대 투수의 투구 시 습관을 관찰해서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하는 능력은 백인천의 장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 감독 본인은 “기술적인 내용 이전에 정신력이 만들어낸 4할이었다”고 얘기합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내가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가 있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은 마찬가지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목숨을 건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개인타이틀을 의식하지 않았다. 만약 의식하고 마음먹고 했으면 타격 3관왕도 얼마든지 했을 거다.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한 게 4할 1푼 2리의 타율을 만들어낸 비결이다.”라고 했습니다.
MBC 청룡은 프로야구 2년째인 1983년 정규시즌을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최고의 성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엔 5,6위를 전전하면서 주로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1989년까지 394승 412패 27무의 기록을 남기고 MBC 청룡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MBC 청룡은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리그 창설 당시부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창단한 팀입니다. 축구와 농구, 배구는 리그 창설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고 이후 창단하거나 타 지역에서 이전했습니다. 2014년까지는 창단 이후로 쭉 서울만을 연고로 해 온 유일한 프로팀입니다. 2014년에 프로축구단 서울 이랜드 FC가 창단되긴 했지만 여긴 역사가 아직 짧으니 실질적으론 MBC 청룡(LG 트윈스)이 유일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만큼 LG트윈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프로야구단이라는 자존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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